첫 문장은 준비한 대본이 아니었다.
솔직한 고백으로 문을 열자 객석의 긴장이 먼저 풀렸다. 그리고 이어진 자기소개. “저는 말이 많은 여자입니다.” 말(馬)이 많은 여자, 그러나 정작 말(言)은 없는 여자. 27년간 그의 직장 동료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 43마리가 일제히 고개를 내민다
그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5시에 과천 서울경마공원의 마방 문을 열면 43마리의 경주마가 일제히 그를 쳐다본다. 말들은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그를 알아본다. 경마공원 안 43마리, 외부 훈련센터와 목장까지 더하면 80~100마리를 관리한다.
그렇게 27년. 그런데 그 시작은 거창한 꿈이 아니었다.
1998년, 공문 한 장에서 시작됐다
IMF가 터진 해, 그는 고3 수험생이었다. 체육학과를 준비했지만 집안 형편은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하던 어느 날, 퇴근하던 영어 선생님이 교실을 들여다보고 그를 불렀다. 한국마사회에서 기수를 모집한다는 공문 한 장이었다.
대학에 합격한 뒤, 그는 그 공문을 들고 서울경마장을 찾았다. 태어나 처음 본 말, 그리고 말 위에 탄 기수. 1999년 2월의 그 장면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 이거다. 나 이거 해야겠다.”
공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년간 기술 교육, 먹여주고 재워주고, 매달 30만 원.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이었다.
한 달에 10kg, 물 대신 얼음을 물고
문제는 몸이었다. 기수의 체중 기준은 50kg 이하, 당시 그는 60kg. 신체검사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이었다. 매일 비옷과 파카를 껴입고 10km씩 뛰었다. 뺀 체중이 돌아올까 봐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얼음을 물고 잠들었다.
미용이 아니라 살기 위한 감량이었다. 그날부터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싸움이 시작됐다. 상대는 말도, 사람도 아닌 밥이었다.
동료들이 식당에서 웃고 떠들 때 그는 조용히 마방으로 향했다. 그 길목의 자판기 옆에는 늘 각설탕이 놓여 있었다. 말이 단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그는 각설탕 몇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가 훈련하던 말, ‘더 럭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곁을 주지 않던 말이 몇 주 뒤부터는 발소리만 듣고 코를 주머니에 비볐다. 빨리 각설탕을 내놓으라고. 사람에게 못 한 이야기를 그는 그 말에게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이야기는 영화가 됐다. 「각설탕」이다.
“여자라서 안 돼” — 외부 변수와 마주하다
2001년, 그는 한국 최초의 정식 여성 기수로 데뷔했다. 하지만 100년 경마 역사에 여성이 없던 곳이었다. 여자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었다. 기승 의뢰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말을 탔네”, 성적이 나쁘면 “역시 여자를 태워서”. 잘하면 그의 것이 아니었고, 못하면 모든 게 그의 탓이었다. 그렇게 10년을 견디며 그는 하나를 배웠다.
그는 질문 하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그리고 기회가 올 때마다 하나씩 증명했다. 처음으로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하던 날, “여자가 되겠어” 하던 시선들이 경주가 이어진 3분 동안은 조용했다.
더 무서운 것도 있었다. 낙마였다. 그의 뼈는 13번 넘게 부러졌고, 한 번은 장애 판정 직전까지 갔다. 언제 실려 갈지 몰라 병원 갈 가방을 늘 방문 앞에 싸두고 살았다. 그래도 그는 다음 날 새벽 다시 말에 올랐다.
서른 살, 아시아 최초 여성 조교사
스물아홉, 기수 경력 8년을 채우자마자 조교사 시험을 봤다. 당시 조교사가 되는 평균 나이는 40대 초반. 주변에서는 모두 “어리고 여자라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관행이 하나 있었다. 시험에서 1등을 하면 떨어뜨릴 수 없다.
그는 필기·실기·실무를 모두 1등으로 통과했다. 마지막 면접장에 들어섰을 때 면접관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2011년, 그렇게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여성 조교사가 탄생했다.
그의 첫 창업이기도 했다. 시작은 말 네 마리, 직원 네 명. 그마저도 직원 전원이 그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이었다.
142억짜리 말이 벌어들인 상금, 1,300만 원
강연에서 그는 청중에게 물었다. “경주마 한 마리가 얼마쯤 할 것 같으세요?” 객석에서 “10억”이라는 답이 나왔다. 정답은 142억 원. 올해 4월 미국 경매에서 낙찰된, 한 번도 경주에 나가지 않은 두 살짜리 말의 값이다. 이유는 단 하나, 부모가 잘 뛰었다는 것.
역대 최고가는 따로 있다. 2006년 ‘더 그린 몽키’, 160억 원. 최고 혈통의 금수저였다. 그 말의 평생 성적은 3전 0승, 벌어들인 상금은 1,300만 원이었다.
혈통은 출발선을 정할 뿐, 결승선을 정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출발선이 뒤에 있다고 느끼는 분, 분명 계실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저는 공문 한 장 들고 시작한 사람입니다.”
마주는 성과가 아니라, 태도를 본다
그의 고객인 마주(馬主)는 대부분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마주였다. 서른 살의 여성 조교사가 그런 이들 앞에서 “말 한 마리만 맡겨주세요”라고 말해야 했다.
당시 업계 문화는 술과 골프로 이어지는 ‘형님 관계’였다. 성적이 좋으면 전화하고, 나쁘면 전화기를 끄고 숨었다. 그는 그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자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술자리 대신 정확한 보고와 데이터를 쌓았다. 관리사들에게는 자신이 받고 싶었던 대우를 그대로 돌려줬다. 호칭을 붙이고, “이거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부탁했다. “3년만 도와달라. 대신 말 타는 것만큼은 내가 다 커버하겠다.”
결과는 데뷔 3년 차 조교사 순위 1·2위. KBS 인간극장에도 출연했다. 말은 40마리, 80마리, 100마리로 늘었다.
그리고 바닥 — “이신우, 이제 끝났다”
사람은 내리막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잘나갈 때 낭떠러지에서 떨어진다. 코로나로 경마가 멈췄고, 마흔이던 그는 모아둔 돈으로 카페를 창업했다. 준비는 없었다. 자본이 준비라고 생각했다.
1년 만에 접었다. 돈을 잃고, 사람을 잃고, 결국 자신을 놓았다. 매일 술로 보내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중증 공황장애·우울증·대인기피 진단을 받았다. 2021년이었다. 본업도 무너졌고, “이신우 이제 끝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3년쯤 지난 2024년 어느 날, 열아홉 살 위 선배가 말을 걸었다. 처음엔 놀리는 말이었다. “너 또 술 먹었냐?” 며칠을 그러던 선배가 어느 날 어조를 바꿨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아무도 그에게 괜찮냐고 물어준 사람이 없었다. 선배는 말했다. “누구도 너를 일으켜 세울 수 없다. 네 마음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자신이 힘들 때마다 글을 썼다고 했다.
글, 이름, 그리고 검도 — 다시 일어서는 법
그는 매일 썼다. 잘 쓸 필요도 없이, 살기 위해서. 연필이 지팡이 같았다고 했다. 선배는 2024년 연말, 약속을 하나 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매일 아침 나오겠다. 너도 나와라.” 정년을 1년 6개월 남긴 선배는 퇴직하는 날까지 그 약속을 지켰고, 떠나며 자신의 마주와 말들을 그에게 인계했다.
2025년 4월, 매일 쓰던 글이 책이 됐다. 『너를 잃고 나를 얻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교보문고가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으로 선정했다. 작은 성공이었다.
몸도 되돌렸다. 2024년 7월 1일 결심하고 다음 날 바로 검도장에 등록했다. 1년 뒤인 2025년 6월, 첫 대회에서 개인전 준우승·단체전 우승을 했다. 마흔여섯의 나이였다.
27년간 경마장 사람만 만나던 그가 검도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경쟁자가 아닌 사람들, 대회에 나가면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내 편이었다.
가장 얻기 어려운 신뢰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
강연의 마지막 키워드는 신뢰였다. 그런데 그가 말한 신뢰는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포장하지만, 집에 돌아와 마주하는 자신에게는 유독 기준이 높았다. 남에게는 “대단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작은 성취는 칭찬해 주지 않았다.
세 단어로 남은 27년
공문을 받은 사람은 많았지만, 경마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저였습니다. 고민하는 대신 움직였다.
혼자 이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도 용기다. 그를 일으킨 건 의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가장 먼저 나를 믿는 것. 남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객관화에서 자신만의 로드맵이 나온다.
“열정은 불꽃놀이, 태도는 켜져 있는 난로”
창업을 준비하는 청중을 향해 그는 열정보다 태도를 이야기했다. 우승의 기쁨은 도파민처럼 딱 일주일이면 사라진다. 하지만 매일 새벽 말과 호흡을 맞추는 시간은 잔잔하게 이어진다.
태도는 습관입니다. 감정과 상관없이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여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템을 고를 때 순서를 바꿔보라고 했다. ‘이게 돈이 될까’가 먼저가 아니라, ‘내가 이걸 하면 저절로 몰입이 되나’가 먼저라고. 경주마들은 결승선이 뭔지도 모른 채 매일 아침 훈련을 즐겼고, 우승은 그렇게 따라왔다는 것이다.
쉬는 날은 따로 없습니다
강연에서 한 청중이 물었다. 그렇게 살면 지치지 않느냐고. 그의 일주일은 이렇다. 수요일 새벽 훈련으로 한 주가 시작된다. 목·금도 같다. 저녁에는 검도장에 간다. 주말에는 경주가 있고, 월요일에는 제주도로 가 대학 강의를 한다. 화요일엔 제주 목장을 둘러보고 올라와, 수요일 새벽 다시 말에 오른다.
일이 노는 거고, 노는 게 일이 되다 보니 따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돈 벌면 벤츠 사야지, 하와이 가야지 하는 마음이면 창업보다 월급이 맞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안정이라는 큰 장점이 있으니까요.”
청중이 물었다
일시 2026년 8월 27일(목) · 장소 마포청년창업취업지원센터 나루 3층
행사 Naroo Career Passion Week — 경험을 디자인하는 기획자 양성과정 1강
구성 강연 71분 + 청중 질의응답 31분 · 대상 창업 준비 및 초기 창업자
“저 사람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오늘 딱 그 한 문장만 가져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는 첫 무대에서 목표를 공개했다. 조교사 1등이 아니라,
‘이신우’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것. 덧붙인 말은 이랬다.
“3년 안에, 김미경 강사님보다 유명한 강사가 되어 여러분을 다시 만나겠습니다.”
질문한 다섯 분에게 사인한 책을 건네며, 그는 첫 영업일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저는 오늘 완성했고, 굉장히 성공한 날입니다.”